아베노 무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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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베노 무네토는 오슈를 기반으로 활동한 인물로, 아버지 아베노 요리토키, 형 아베노 사다토와 함께 전9년의 역에서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와 대항했다. 패배 후 유배 생활을 했으며, 시코쿠 이요국, 규슈 지쿠젠국 지쿠젠 오시마로 유배지를 옮겨 고려 및 송나라와의 교역에 기여했다. 그는 약사여래를 안치하기 위해 안쇼인을 세웠으며, 1108년에 77세로 사망했다. 그의 후손들은 규슈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오슈 후지와라 씨 가문, 사사키 씨 가문 등과 연관되었으며, 일본의 정치인 아베 신타로와 아베 신조가 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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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 무네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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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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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베노 무네토 |
별명 | 도노미사부로 |
출생 | 1032년 |
사망 | 1108년 3월 18일 |
묘소 |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오시마 |
가문 | |
씨족 | 아베 씨 |
아버지 | 아베노 요리토키 |
어머니 | 기요하라 씨 (무노리의 백모) |
형제 | 아베노 사다토 아베노 무네토 아베노 이에토 아베노 유키토 후지와라노 쓰네키요의 아내 |
자녀 | 무네요시 나카토 스에토 후지와라노 모토히라의 아내 사사키 스에요시의 아내 |
군사 정보 | |
소속 | 아베 씨 |
2. 생애
요리토키의 아들로 태어났다. 1051년부터 1062년까지 12년간 오슈 지방의 호족으로서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에 맞서 전9년의 역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배하였다. 아버지 요리토키와 형 사다토는 전투 중 사망하였고, 무네토는 항복하여 미나모토노 요시이에와 함께 교토로 압송되었다.
압송 도중, 교토의 귀족들이 오슈의 에미시들은 꽃 이름도 모른다며 매화꽃을 가리키며 비웃자, 무네토는 "나 살던 땅엣 매화꽃 가져와 보이시고 높은 분께선 어인 말씀이온지"(わが国の 梅の花とは 見つれども 大宮人は いかがいふらむ)라는 노래를 읊어 교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헤이케 이야기』에 전해진다.[9]
시코쿠(四国)의 이요국(伊予国)으로 유배되어 이마바리시(今治市) 도미타(富田) 지구에서 3년간 거주하다가 1067년 규슈(九州) 지쿠젠 지쿠젠오시마(筑前大島)로 다시 유배되었다. 훗날 무나카타 씨의 다이묘(大名)가 된 무네토는 고려나 송(宋)과의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1108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3] 이요에서 지쿠젠으로 옮겨졌다는 설과 지쿠젠 이전에 다자이후(大宰府)에 유배되었다는 설도 있다.[3]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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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네요시 | 장남. 오시마 타로(大島太郎)·아베노 곤노카미(安倍権頭)로써 오시마의 소료(統領)를 이었다. |
나카토 | 차남. 사쓰마국으로 보내졌다. |
스에토 | 삼남. 히젠국의 마쓰라(松浦)로 보내져서 마쓰라 씨의 사위가 되었다. |
장녀 | 후지와라노 모토히라의 아내(다만 의문도 있다). |
막내 딸 | 사사키 스에사다(佐々木季定)의 아내. |
2. 1. 전9년의 역
오슈의 오쿠 6군(奥六郡)[8]을 기반으로 아버지 요리토키와 형 사다토와 함께 미나모토노 요리요시(源頼義)에 맞서 싸웠다(전9년의 역). 12년에 걸친 분전 끝에 사다토 등은 최북단의 구리야가와 요새(厨川柵)[9]에서 살해되었고, 무네토 등은 항복하여 목숨을 건지고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와 함께 교토로 연행되었다.이 무렵 오슈 지역의 에미시(蝦夷)들은 꽃의 이름 하나도 모른다며 조롱하던 어느 귀족이 매화꽃을 가리키면서 “저게 뭔지는 아느냐?”라며 비웃자 그 자리에서 「나 살던 땅엣 매화꽃 가져와 보이시고 높은 분께선 어인 말씀이온지」(わが国の 梅の花とは 見つれども 大宮人は いかがいふらむ)라는 내용의 노래를 읊어 교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헤이케 이야기』).
2. 2. 유배 생활
아베노 무네토는 시코쿠(四国)의 이요국(伊予国)으로 유배되었고 오늘날의 일본 이마바리시(今治市) 도미타(富田) 지구에서 3년간 거주하였으며, 그 뒤에 조금씩 세력을 키웠기 때문에 지랴쿠(治暦) 3년(1067년) 규슈(九州) 지쿠젠(筑前) 무나가타 군(宗像郡) 지쿠젠오시마(筑前大島)로 다시 유배되었다. 훗날 무나가타의 다이묘(大名)가 된 무나카타 씨(宗像氏)에 의해 고려나 송(宋)과 교역할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시마의 최승지에 자신의 개인적인 호신불 약사유리광여래(薬師瑠璃光如来)를 안치하기 위해 안쇼인(安昌院)을 세웠다. 가쇼(嘉承) 3년(1108년) 2월 4일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3]이요에서 지쿠젠으로 옮겨졌다는 설과 지쿠젠 이전에 다자이후(大宰府)에 유배되었다는 설도 있다.[3]
2. 3. 가족 및 자녀
이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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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네요시 | 장남. 오시마 타로(大島太郎)·아베노 곤노카미(安倍権頭)로써 오시마의 소료(統領)를 이었다. 그 자손인 아베노 요리토는 규슈의 검호(剣豪)로써 이름을 알렸으며, 다이묘 아키즈키 가문에 출사하여 아베립검도(安倍立剣道)라는 검술유파를 열었다. |
나카토 | 차남. 사쓰마국으로 보내졌다. |
스에토 | 삼남. 히젠국의 마쓰라(松浦)로 보내져서 마쓰라 씨의 사위가 되어 마쓰라노 사부로다이후 사네토(松浦三郎大夫実任)라 이름하였다. 그 자손은 북부 규슈의 수군 마쓰라토(松浦党)를 구성하는 일족이 되었다고 한다. |
장녀 | 후지와라노 모토히라의 아내(다만 의문도 있다). 오슈 후지와라 씨 3대 당주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어머니(이설도 있다). |
막내 딸 | 사사키 스에사다(佐々木季定)의 아내. 사사키 스에요시(佐々木秀義)의 어머니. 헤이지의 난 이후 본관지인 오미국 가모 군(蒲生郡)의 사사키 장(佐々木庄)[10]에서 쫓겨난 스에요시가 외가쪽 연줄이 있는 오슈 후지와라 씨에 의지하려 북쪽으로 향하던 도중에 사가미국의 무장 시부야 시게쿠니(渋谷重国)에게 그 무용이 눈에 들어 시게쿠니의 식객이 되었다고 한다. |
아베노 무네토의 셋째 아들 스에토는 히젠 마쓰라 일족과 인척관계를 맺어 마쓰라 사네토(松浦実任)라 칭하였다. 그의 자손인 마쓰우라 다카토시(松浦高俊)는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의 측근으로 헤이케(平家) 수군으로 활약하였고, 지쇼-주에이의 난 이후 오늘날의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 나가토시(長門市) 아부라야(油谷)로 유배되었다.[6]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출신의 일본 귀족원 의원이자 제18대, 22대 도쿄부 지사를 지낸 아베 히로시는 헤이케 이야기에 나오는 "아베 무네토와 매화의 고사"를 따라 아베 씨와 연고가 있는 모리오카 시 아베노타테 정에 별저를 짓고 아고바이소(현·이치노쿠라 정원)라 이름 지었다.[11] 이는 "우리 고향의 매화(梅)의 저택"이라는 뜻이다. 편액은 이토 히로부미가 썼으며, 현재는 모리오카 시 하라 타카시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3. 후손
그 뒤 다카토시의 딸은 다이라노 도모모리(平知盛)의 셋째 아들 다이라노 도모타다(平知忠)에게 시집갔으나, 겐지(源氏)의 박해를 피해 도모타다의 일족은 아내의 조부로서 마쓰라 씨를 칭하고 있던 스에토(사네토)의 본성(本姓)인 「아베」를 사용하였다고 한다.[6]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와 그의 아들 아베 신조(安倍晋三) 등을 배출한 야마구치 현의 아베 씨는 이때 겐지의 박해를 피해 아내의 성씨를 칭했던 도모타다의 후손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는 일본 자민당 중의원으로 외무대신을 지냈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였다.[6]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아베노 무네토를 조상으로 하는 44대손이라고 한다.[4]
4. 일화
구리야가와 책에서 멸망한 아베 씨를 기리기 위해 모리오카 시립 구리야가와 중학교는 매화를 학교의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조
[1]
서적
延久二年合戦について
吉川弘文館
2007
[2]
서적
コンサイス日本人名辞典 第5版
株式会社三省堂
2009
[3]
서적
平泉藤原氏
無明舎出版
2009
[4]
웹사이트
記者ログ(11/27):最長政権の「源流」
https://sp.kahoku.co[...]
2019-11-27
[5]
웹사이트
鳥海の山名由来
https://www.city.yur[...]
由利本荘市
[6]
서적
延久二年合戦について
吉川弘文館
2007
[7]
문서
무네토류(宗任流) 아베씨(安倍氏)의 마쓰라가(松浦家)과 도모모리류(知盛流) 헤이시(平氏)의 먼 후손이라고 한다.
[8]
문서
지금의 일본 이와테 현(岩手県) 내륙.
[9]
문서
일본 이와테 현(岩手県) 모리오카 시(盛岡市).
[10]
문서
오늘날의 일본 오미하치만시(近江八幡市).
[11]
문서
오늘날의 이치노쿠라 정원(一ノ倉庭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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